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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사봉공을 몸소 실천한 조헌선생역사공부 2023. 8. 6. 08:41
멸사봉공이란 말은 "공적인 목적을 위해 사적인 감정이나 이해관계 등을 포기한다"라는 말로 요즘 공무원들의 좌우명으로 내세우는 표현으로 알고 있는데요. 누가 보더라도 공직자로서의 본보기와 같은 삶을 살다 가신분이 있어 소개합니다.

금산의 700의총 1.조헌은 어떤 인물인가?
이른 나이에 문과급제하여 누가 봐도 옳은 말만을 상소하고 행동으로 실천하면서 , 시기하는 자들 때문에 귀향을 가고, 시간이 지나면 잘못이 해소되어, 다시 오뚝이처럼 복귀하여 올바른 정사를 위해 왕에게 상소하면, 또다시 반대파의 공격으로 다시 파직되거나, 유배당하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였는데, 최후에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의병 700명과 함께 나라를 위해 기꺼이 몸을 바친 중봉 "조헌"선생에 대해 알아볼까 합니다.
2. 왕에 직언, 상소하여 파직, 귀향을 반복하였던 충신
조헌은 경기도 김포 출신으로 5살 때부터 글을 읽는 등 영리하였다고 하는데요. 집은 가난하였으나 12세 때부터 시와 글을 배워 22세에 성균관에 입학하였고, 1567년(명종 22년)에는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이후 평안도 정주 성균관 향교교수로 있으면서 , 그 지역 선비의 풍속을 일신시켰다고 합니다.
1572년(선조 5년) 홍문관의 정자의 지위에 있을 때 왕의 불공이 옳지 않음을 고하다가 파면되었느데요. 이후 2년 후 명나라에 파견되는 절정관이 되어 연경을 다녀와서 명나라의 문물과 좋은 제도를 본받을 것을 제안하면서 조선에서도 공·사노비를 양민화 하여 징병자원을 증대시키면 20년 뒤 100만의 정예 병사를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물론 양반의 유교주의가 철저한 조선에서 노비를 해방시키는 일이 받아들여졌을 리가 없겠지만 말입니다. 만약에 조헌의 주장대로 진행이 되어 100만 명의 군대를 가졌더라면, 약 18년 후에 임진왜란은 일어나지도 않았겠지요?
경기도 통진현감으로 재임 시에 법을 어긴 궁노비가 취조 중, 매를 못 이겨 발생한 사망으로 인해 부평으로 귀양을 갔습니다. 1582년(선조 5년)에는 보은 현감으로 소를 올려 노산군(단종)의 후사(後嗣)를 세울 것과 사육신의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할 것을 청했으나 도리어 모함을 받아 파면되었습니다.
1586년 소를 올리는 한편 정여립의 행패를 따지고 공격하였으나 관찰사가 화를 두려워하여 여러 번 물리치므로 벼슬을 내놓고 옥천으로 돌아갔는데, 사간원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습니다. 그해 5월 길주 영동역으로 유배되었으나 6개월 만에 왕명으로 사면되었습니다.
1591년(선조 24)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게이테쓰 겐소 등을 조선에 보내와서 명나라를 칠 것을 전달하여 임금과 신하가 머뭇거리고 있을 때, 조헌은 상소를 올려 겐소 등을 죽일 것을 청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요. 상경하여 왜군을 대비할 책을 상소했으나 조정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시골에 내려가 왜란에 대비하였다고 합니다.
3. 나라의 위기에 멸사봉공한 애국자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옥천에서 의병을 일으킨 조헌은 홍성 지방으로 가서 의병 천여 명을 모집하였는데, 왜군은 청주에서 진을 치고 있어 관군이 여러 번 패하였는데, 승장(僧將) 영규와 함께 청주성을 수복하여 충청도 공략의 본거지를 탈환하는 등 전과를 올렸습니다.
이후조헌은 남은 700명의 의병을 이끌 있었는데요. 당시 금산의 왜군이 충청도 일대로 세력을 넓힐 기세라는 소식을 듣고 그 길로 영규와 함께 금산을 향해 가서 왜군에게 함락된 금산의 10리 밖에 이르렀으나, 왜군은 이미 조헌이 거느린 의병의 약점을 알고 역습해 왔습니다. 조헌의 의병들은 역전 분투하여 왜군에게 많은 손해를 주었으나 많은 수를 대적하지 못하여 안타깝게도 조헌과 7백 의병이 전멸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를 통해 호남 방어의 근거지였던 금산을 회복하게 되었으니, 조헌은 멸사봉공을 살아서는 충신으로 그의 마지막은 자기를 희생하여 몸소 실천하셨던 진정한 애국자이셨습니다마지막으로
요즈음 정치를 보면,여야가 서로 잘났다고 싸우는 데요. 정치판을 한 발짝 물러서서 "멸사봉공"하는 마음가짐으로 나라를 바라보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려나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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